2010년 3월 15일 월요일

이중성의 회랑(回廊)



"나는 불행하다. 그래서 나는 행복해야 한다."

그런데 나는 행복해야 한다는 바로 그 요구 속에 불행이 있다. 착해지려고 노력할 때, 바로 그 선(善)인 그것이 반대인 악(惡)인 것이다. 긍정된 모든 것들은 그것 자체의 반대를 포함하고 있으며,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극복하고자 하는 그것을 강화시킨다.

당신이 진실 또는 실재를 체험하고 싶어할 때 그 요구는 바로 현재 '있는 것'에 대한 당신의 불만에서 나오는 것이며, 따라서 그 요구는 요구와 반대되는 것을 낳는다. 그리고 그 반대되는 것 속에는 '있었던 것'이 들어 있다.

그래서 이 끊임없는 요구에서 벗어나야 하며, 그렇지 않으면 이중성의 회랑(回廊)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. 이것은 당신 자신을 아주 완전하게 앎으로써 마음이 더 이상 뭔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.  

그런 마음은 체험을 요구하지 않는다. 즉 그것은 도전을 바라지 않으며 도전을 알지도 못한다. 그런 마음은 '나는 잠들어 있다' 거나 '나는 깨어 있다' 라고 말하지 않는다. 그것은 완전히 있는 그대로다. 오직 좌절하고 좁고 얕고 제약된 마음만이 항상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. 그러면 이 세상에서 '더 많이' 라는 말 없이, 이 끝없는 비교 없이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? 정말 그럴 수 있을까? 그러나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.
 
- 크리슈나무르티

댓글 2개:

  1. trackback from: 많이 아는 것과 이해의 상관관계-정수장에서 문득..
    많이 아는 것과 이해의 상관관계-정수장에서 문득.. (내가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찰) [다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나의 개똥철학임으로 문제제기와 오류를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.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지만, 나의 지식의 수준상 절대적이거나 철학적이다 자부하고 싶진않다는 것에서 이 글을 보고 비판하거나, 다른 부분들을 고찰해 보는 것은 자유로 두고 싶다. 건전한 비판과 고찰이 있었음 좋겠다. 그것이 내가 좋아 하는 것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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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2. 나는 불행하다, 그래서 나는 행복해야 한다.



    나는 살아있다, 그래서 나는 죽어야 한다.??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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